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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서 찬양팀을 인도하다보니 이래저래 잡다한 지식들이 많아져간다. 그 중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하나씩 풀어내는 것도 혹시나 이런 정보에 궁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글을 쓰기로 한다.

우선 DI 박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교회에서 찬양팀에 있다고 하더라도 DI박스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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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BOX 는 Direct Injection BOX 의 약자로 주로 기타등의 악기에서 나오는 신호를 마이크입력단자에 들어갈 수 있는 신호로 변환시켜주는 장치다.

저렴하게는 2만원부터 쓸만한 것은 20-30만원대에, 고급스러운 것은 몇백만원까지 한다고 한다. 물론 이 글을 쓰는 필자야 음악에 빠져 사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4-5만원대 제품을 사용한다.

임피던스라는 것이 있다. 저항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그냥 편의상 저항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게 좋겠다. (저항에 대해서 모른다면.... 답이 없다 ㅜ.ㅜ)

쉽게말해서 모든 소리를 전달하는 장치(마이크, 키보드, 일렉, 베이스, 등등)는 저항이다. 소리를 전달할 때 저항값을 변화를 통해서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꿔서 전달한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일반 마이크의 경우 수십오옴 정도의 저항값의 변화만을 가지는 반면, 일렉이나 베이스같은 악기의 임피던스는 수십k오옴에서 메가오옴에 이른다. 이 정도가 되니 쉽게 말해서 1.5V 출력을 내는 전기제품과 220V 출력을 내는 전기 제품을 한자리에 쓰는 것 같은 형식이 된다. 일반 믹서에 이것들을 아무런 중간 여과 장치 없이 그대로 연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것은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고, 찢어지게 들리고, 어떤 것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있는 것이 바로 DI 박스다. DI 박스는 일렉이나 베이스 같은 악기의 출력단에서 나오는 신호를 변환시킨다. 그래서 일반 마이크의 출력과 동일하게 만들어준다. 이 DI 박스를 연결하는 방식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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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M 의 FDR-60 이라는 DI박스다. 악기를 연결하고, 나오는 캐논잭을 다시 마이크 입력단자로 넣으면 된다. 필요하다면 병렬 아웃풋 단자를 통해 55잭을 다시 기타용 앰프에 연결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때 한가지 꼭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일렉의 경우 음의 분포가 상당히 고음에 집중된다. 그래서 믹서를 통해 스피커로 들려질때 고음부분에 많이 편중된게 된다. 스피커를 잘 보면 아래부분에 큰 직경의 스피커와 윗부분 작은 직경의 스피커가 보통 같이 붙어 있다. 큰 직경의 스피커에서는 저음을 담당하고 작은 직경의 스피커(보통 twitter, 트위터 라고 부른다)에서는 고음 부분을 담당한다. 문제는 기타의 소리가 거의 6kHz 대의 상대적으로 높은 주파수를 띄기때문에 작은 트위터에 무리가 가게 된다. 트위터를 못쓰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일렉은 DI 박스를 통해서도 믹서에 넣지 말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일렉 전용 앰프가 충분히 감당이 되면 그렇게 하는게 제일 좋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저렴한(?) 장비를 갖춘 군소찬양단들에게 이와 같은 주의 사항은 어쩌면 낙담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굳이 너무 크게 스피커를 혹사 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파위는 충분하고, 스피커에 출력되는 것은 MAX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렉은 한단계 더 조금만 더 줄여주자. 그게 아무래도 안전할테니 말이다. 맘같아서야 빵빵한 사운드에 모든 것을 한번에 날려버릴 정도의 큰 소리를 내고 싶겠지만 한번 공연하고 말것도 아니니... ^^ 조금만 더 조심해서 일렉을 사용하면 되겠다.

최근 알아본 중에 가장 저렴한 것으로 FDR-60 과 NDI-100 이 있었다. 지금도 DI박스로 검색해서 보면 가장 저렴한 것으로 두가지가 나올 것이다. 전자는 패시브타입이고, 후자는 액티브타입이다. 차이는 외부전원을 필요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인데, 작은 소리라면 그리 다르게 들려지지 않겠지만 조금 커지면 왜곡에 차이가 나는 듯 하다. 또 패시브와 액티브의 차이는 입력 단자의 임피던스값에 큰 차이를 보인다.

FDR-60은 50 k ohm , NDI-100은 1M ohm 의 임피던스를 가진다. 이런 차이들 때문에 가급적 패스브타입보다는 번거롭더라도 전원을 사용하는 액티브 타입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물론 개인차가 있는 듯 하다. 어떤분은 (역시 음향쪽 일을 하시는 분) 저렴한 액티브타입을 쓰는 것보다 차라리 패시브가 소리가 나은것 같다고도 하니, ....

조금 더 사용해보고, 비교 분석할 정도가 되면 뭐가 좋은지 올리겠지만 우선은 이정도로 기초적 지식을 정리한다. ^^ 시간이 되면 앰프, 파워, 믹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조금 더 여유가 되면 자작하는 무선 개인 모니터 이어폰에 대해서도 (현재 머리속으로 생각해 둔 바는 있다.) 한번 만들어보고 글을 써볼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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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DI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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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icleLim(201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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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2010-02-A)

(막 6:30-44) 30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다 배불리 먹고 43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1. 낱낱이 고하니(30)
사도들은 예수의 말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의 병을 고치는 것과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에 적당히 하지 않았다. 사도들은 그들의 한 일을 예수께 와서 말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낱낱이’ 고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열심히 했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의 앞에 와서 말하는 것에 부끄러움이나 주저함이 없다. 억지로 과대포장하지도 않고, 잘못한 것이 있어 숨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다.

2. 한적한 곳에 가서 잠간 쉬어라(31)
예수는 사도들의 수고를 인정한다. 그들이 고생한 것과 쉴 틈도 없이 여지껏 열심을 내었음을 예수도 인정한다. 그들은 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쉴틈도 없이 최선을 다한 제자들이다. 음식 먹을 겨를도 없어 배가 고픈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한적한 곳을 찾아 배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난다. 거기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병을 고침 받고, 예수의 가르침을 전해 들었다. 그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사역지로 떠나기 전 그들은 잠시 한적한 곳에서 쉼을 가지려고 했다.

3. 도보로 달려온 사람들(33)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떠난 예수 일행을 쫓아 다시 새로운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와 그 일행을 찾아온다.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들을 따라왔다. 배를 타고 가는 예수와 제자들을 보며 사람들은 먼 발치에서 그 작은 배의 그림자를 따라 도보로 터벅터벅 어디까지 가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그렇게 따라온 것이다. 배가 호숫가에 가까이 가는 기색이 보이면 사람들은 뛰어왔을게다. 거기서 예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사람들은 한걸음에 배가 닿는 선착장으로 먼저 가서 배를 기다렸다. 그들은 예수를 만나기 원했다. 그들은 예수를 통해 구원받기 원했고, 그들은 예수를 통해 평생을 기다려 온, 메시야의 모습을 확인하기 원했다.

4. 불쌍히 여기사(34)
한적한 곳을 찾아 제자들과 쉼을 가지려 했던 것이 처음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거기엔 또 다른 큰 무리가 모여 있었다. 여러 마을에서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근처에 예수가 있다는 소식에 예수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 그들은 예수가 탄 배를 보고 예수를 따라왔다. 그 큰 무리는 목자없는 양 같았고, 예수는 그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 피곤한 중에 다시 새로운 사역이 시작된다. 사람들에게 하늘의 복음을 전한다.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구원과 영생의 메시지를 전한다. 눈 먼자는 보게 되고, 앉은뱅이는 일어나게 되는 치유의 기적들도 그곳에서 병행해서 이루어졌으리라.

5. 때가 저물어가매(35)
시간은 흘러 저녁이 되었다. 예수를 쫓아 도보로 뛰어온 사람들도 지쳤고, 하루종일 먹을 겨를도 없이 지금까지 예수와 함께 한 제자들도 지쳤다. 더 이상 제자들은 사람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드러누워서 한잠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을게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께 말한다. 저 사람들이 마을에 내려가서 알아서 뭐든지 사 먹게 보내십시오라고 말이다.

6. 사 먹게 하옵오서 VS 너희가 주라(36,37)
인간적인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제자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한계상황에 부딛혔다. 더 이상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지금까지 밥먹을 시간조차 없이 그렇게 열심을 내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일어날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 제발, 제발 저 사람들이 이제 그들의 마을에 내려가서 거기서 알아서 먹게 하십시오. 우리들은 더 이상 무엇을 할 힘도 여력도 돈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바로 그 순간 쉬라고 말하는 대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한다. 제자들의 형편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왜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셨을까? 제자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일까? 아니다. 예수는 이 모든 일이 결국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제자들도 알기를 원했다.

7.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들의 최선과 예수의 축사
예수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은 길에서 그를 보고 달려왔을 뿐이다. 그들에게 먹을 것이 충분히 있지 않았다. 혹은 가져온 것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이미 먹었을 것이다. 제자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 중 먹을 것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오직 남은 것은 물고기 두 마리와 다섯 덩어리의 떡이 전부였다. 그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그것을 두고 축사하고 먹을 것을 사람들에게 먹게하자 기적이 일어난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된다.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차게 된다. 그 자리에 있었던 성인 남자만 오천명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8. 인간의 최선과 하나님의 긍휼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이제 최선을 다했으니 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 시점에서 이제 시작하라고 말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나는 이제 지쳐서 움직일 힘도 없으니 더 이상 무리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때 나에게 말한다. 여기까지 너의 최선이었다면 이제 여기서부터는 나의 긍휼의 시작이라고 말이다. 세상에 필요한 것은 사도들의 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열심을 드러내는 것인가? 누군가 나의 열심을 보고 나를 칭찬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의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볼때 그리스도인은 기뻐한다.
나를 드러내기 위한 나의 최선은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드러내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최선은 그 자체로는 큰 드러남은 없지만 그것이 펌프의 물을 뿜어져 나오게 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할 때 그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다고 여기는가? 그래서 이제는 쉬고 싶다고,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때 하나님의 긍휼의 사역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역의 시작에 하나님은 우리를 부른다. “너희가 주라”라고 말이다.


오병이어 (2010-0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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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icleLim(201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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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6:21-29)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 선악의 판단기준으로 자신이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헤롯은 자신이 한 말이 곧 자신의 올무가 된다. 그는 두가지 선택에 놓였다. 요한을 죽이고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던지 혹은 자신의 말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하던지 말이다. 성경은 헤롯의 선택이 자신의 말과 논리에 갇혀 결국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어리석음으로 끝났음을 보인다. 헤롯은 자신의 약속은 실천했을지 모르나 그것은 선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지독하고 끔찍한 죄의 결과일 뿐이었다. 헤로디아의 딸이 잘못이 클까 아니면 헤롯의 잘못이 클까? 헤로디아는 가까이 해서는 안될 독을 품은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를 가까이한 것도 헤롯이요, 요한의 목을 벨것을 최종적으로 명령한 것도 헤롯이다. 아무리 절대권력을 지닌 왕정시대의 왕이라도 그 자신이 선악의 판단의 근거가 될때 얼마나 처첨한 현실이 벌어지고 선과 악이 왜곡되는지를 본문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 나라의 절반과 세례요한의 머리
세례요한의 머리는 나라의 절반의 가치가 안되는 것이었을까?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겠다는 헤롯의 말과 그 말에 따라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한 요구사이에서 잠시 절망하게 된다. 의인의 머리의 가격은 얼마인가? 그녀는 나라의 절반에 해당되는 것까지 구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구하는 대신 그 어미에게 종속된 모습을 보인다. 심히 중대한 가치판단의 자리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바보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어미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 어미가 원하는 것을 묻는다. 효성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그녀는 스스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마마걸로 성장했다. 예쁘고 춤을 잘추는 최고의 아이돌같은 외모를 갖췄을지는 모르나 그 머리는 선악간의 일을 분별못하고 심지어 무엇이 더 이익이 되는지에 대한 가치판단마저 하지 못할 정도의 바보다. 어미의 요청이 어리석은 것이라면 당연히 그것을 포기하고 바른 것을 구할수 있어야 했지만 여전히 어미의 한 의인의 생명을 취하고자하는 사악한 복수심을 그대로 듣고 왕에게 전할 정도로 어리석은 여자였다.
헤롯의 생각은 어떠한가? 한 의인의 가치와 나라의 절반의 가치중에 세례 요한의 목숨의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만일 헤롯이 정말로 세례요한을 뛰어난 존재요 버릴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나라의 절반 이상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무희의 춤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머리를 넘길수 없었다. 헤롯 역시 어리석은 선택을 한 불쌍한 세상의 통치지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헤롯은 그가 통치하는 나라의 절반과 세례요한을 달아보고 결정했다.

# 의인의 최후를 원하는 사람들,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사회, 슬퍼하는 소수
오직 요한의 제자들만이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의 시체로 장사한다. 의인의 죽음을 바라는 이들이 있으며,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의인의 소리를 왜곡하려하고 심지어 죽음이라는 방법까지도 동원해서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의 방법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들은 입에 바른 소리를 내며 그들은 아름다운 춤으로 눈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를 기쁨중에 보이지 않는 어두움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거기서 세상의 절반과 의인의 외침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한다. 많은 이들은 양심의 소리에 아파하면서도 세상의 절반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배워왔기때문이다. 헤로디아의 딸처럼 우리는 세상이라는 잘못된 어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헤롯처럼 무엇이 옳은지를 알지만 세상의 절반의 가치에 마음을 돌린다. 하지만 거기에 슬퍼하는 소수가 남아있다는 것이 아직 이 땅을 살아있게 한다. 남은 것은 슬퍼하는 소수다. 그 슬퍼할줄 아는 소수가 되는 것,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있어야 하는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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